[스크랩] 「위대한사람 5편」내가 일하는게 이상해?
내가 일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안쓰러운지 '집에서 쉬시지'라며 안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젊은 제가 침대에 누워 하루종일 좁은 창문을 처다본다면 어떤지 아세요? ㅎㅎ 그건 장애가 있던 없던 답답해서 죽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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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틀린 손과 움직이지 않는 다리, 저는 몸의 80%가 움직이지 않는 중증장애인 김영주입니다.
안녕하세요. 짠돌이카페 여러분, 저 기억하시는지요?
대왕소금입니다. 좋은일 한번 할까요?^^ [245] | ![]() |
10.11.09 | 18951 |
를 통해 짠돌이카페 도움으로 전동휠체어를 선물받고 다시 사회로 나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너무 감사해서 인사먼저 드려요.
저의 이야기를 해 볼까요?
1999년 1월 18일 오후 11시 10분...제 인생은 끝났다 생각했습니다.
회사 정문을 나선지 채 5분도 되지 않은 급커브 길에서 차가 전복되었고 목뼈가 으스러지며, 목 이하로 내려오는 신경의 손상으로 손과 발이 마비되었습니다. 당시 제 나이 27살, 생의 꽃이 활짝 피던 즈음~ 저는 중증 장애인으로 익숙하지 않았던 삶을 시작하였죠.
1년이 넘는 병원생활, 나에게 주어진 건 휠체어와 장애인 등록증, 그리고 경재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뒤척임..
그 외 모든 것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할 수 없었습니다. 눈뜨면 TV가 나오고 리모콘을 조작할 수 없어 한가지 채널만 볼 수 밖에 없었답니다. 그렇게 2년을 살았고 사람에 대한 외로움,그리움을 달래며 살았다고 할 수 도 없는 삶을 이어가고 있었죠. 이대로 제 몸은 굳어가고 등창에 시달리다 짦은 생은 서서히 식어갈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 나이 29 마음만큼은 아직도 뛰다못해 날고 싶은 청년 김영주입니다.
어떻게해서든 이 침대에서 벋어나 따듯한 햇살이 비추는 저 창문너머 세상으로 달려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장애인 지원 복지센터며 시청이며 저를 도와줄 수 있다 생각되는 모든 기관에 연락해 봤지만 도움을 주겠다는 연락은 다시 오지 않았었고 포기할 수 없던 그 즘 구입한 컴퓨터를 통해 장애인지원이 가능한 서울의 국립재활원에 입원 신청을 하고 재활치료에 매진하였습니다.
그리고 저의 팔이 조금.. 아주 조금 움직이는 것을 느꼈고 목도 좀 더 부드럽게 움직인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제 할 일을 찾는 것으로 목표를 잡고 중증전신마비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우선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다시 장애인 단체를 직접 찾아가 상담을 하였고 서울시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장애인의 올바른 인식 전환을 위한 일일교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매주 토요일 초등학교 5학년을 대상으로 3교시 수업을 진행하며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인식, 장애체험, 체험 후 토론식으로 4개월동안 11개 초등학교에서 진행을 하였습니다. 이 때 정리된 자료는 전국 초등학교에 배포되어 장애인에 대한 올바를 인식개선 교육자료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밖에도 장애인 패션쇼도 참가하기도 하고 크고 작은 장애관련 행사에 많이 참가를 하였지만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을 찾기란 쉽지 않더라구요. 그러던 중에 장애인이동권연대와 소아마비협회 정립회관애소 진행 중 인 중증장애인 자립생활세미나를 접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드디어 찾게 되었습니다. 저와 같은 중증장애인도 사회로 나와 일을 하며 사는 선진국의 자립생활제도를 배우고 우리나라에서도 비장애인과 같이 평범한 사회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참여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자립생활네트워크라는 중증장애인 모임이 만들어지게 되었고 저는 홍보담당을 맞아 활동하게 되었죠. 하지만 국립재활원의 정해진 입원기간이 끝나며 저의 집 이천으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끝없는 경재난과의 싸움, 취직하자!
서울에서 있던 4개월사이 전 많이 달라졌습니다. 몸도 가벼워졌고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온 저는 다시 중증전신마비장애인 김영주일 뿐, 할 수 있는 것은 없더군요. 서울에서의 경험과 지식은 저를 더 괴롭힙니다. 나도 할 수 있는데... 내가 활동할 수 있도록 누군가 도와준다면 이동만 할 수 있다면~ 매일 밤.낮.눈을 뜨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에 전 어떻게 움직일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 보건복지부의 중증장애인 활동지원도 알아보고 전경련 상무님도 만나보고 시청의 지역사회후원도 알아보고 장애인단체, 시민단체에도 호소해 봤지만 개인에게 직접지원이 어렵다는 말과 "그냥 집에서 요양하다보면 좋은날이 올것이니 편하게 기다리는 것이 나을 겁니다"라는 말을 듣게 되었죠. 2년 가까이 사회로 나가기 위해 알아봤지만 지원을 통한 해답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벌어서 도우미를 고용하겠다고 맘먹었습니다.^^
수개월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뭘까? 고민하다 교통사고때문에 누구보다 보험의 중요성을 알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보험영업을 하기로 마음 먹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만들어 무턱대고 영업소장님께 "다른 직원들과 똑같은 환경에서 일 할 테니 저에게 일 할 기회를 달라 부탁하고 돌아왔습니다. 몇주가 지나도 연락이 없어 다시 찾아뵈기를 반복했고 11월, 수원 보험연수원에서 2주의 교육과 자격시험이 있으니 준비하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는 정말 뛸 듯이 기뻤습니다. 저에게도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했습니다. ^_^
2003년 12월 사고 후 5년 만에 다시 직업을 같게 되었습니다.
한달 후엔 다시 월급을 받고 펑펑 울었습니다. 대견하고 자랑스럽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뿌듯함을.. 아~
추운 겨울 온 몸이 꽁꽁 얼면서도 고객을 만났고 일사병에 시달려도 고객을 만났습니다. 그렇게 벌써 9년째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누군가의 도움만 있다면 충분히 전 일 할 수 있는 "김영주" 인것을 증명하였죠. 비록 활동보조인에게 월급을 주고 나면 남는 것도 없는 직장생활이지만 전 매달 최선을 다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요? 돈을 줘야만 직장을 다니고 다닐 수 있는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요.
누워서 하루종일 있었다면 전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요? ㅎㅎㅎ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전 그렇게 더럽게 운없는 운명을 거부하고 환한 사회를 멀쩡하게 다니고 있으니까요.
지금 많이 힘드시나요? 그럼 조금만 눈을 돌려 어려운 이웃을 찾아 자원봉사를 한번 해보심이 어떨까요? 저도 가끔씩 저보다 더 중한 장애인을 만나고 장애아동시설을 찾아 같다오면 저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이웃도 있다는 것을 느끼며 그 사람들에게 미약하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더욱 노력하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힘을 내곤 합니다.
행복은 고난 뒤에 숨어있다고 누가 말하더군요. 지금의 고민과 갈등, 그로인한 고난은 여러분이 앞으로 찾고 싶은 행복을 갖기 위한 과정이라고, 요즘 힘들어 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저 같은 사람도 이렇게 살고 있다고, 건강하고 평범한 하루의 일상도 정말로 소중하고 행복하다는 것을 글로 써봤습니다. 여러분의 오늘 하루도 소중하고 행복한 하루이기를 바래며...
여담 Tip~*
이 : ... 제 자신이 부끄러워지네요~(*ㅡㅡ*)
김 : 전 이대표님 보면서 아직 살만한 세상이라고 느끼는 걸요! 항상 부족한 저를 생각해 주시니 ㅎㅎㅎ
이 : 요즘 몸이 부으신거 같아요?
김 : 아 ㅎㅎ 부은게 아니라 살이 찐거에요. 움직이지 못하니 먹으면 먹는데로 살이 쩌요. ㅎㅎㅎ
이 : 요즘 일은 잘 되세요? 자동차보험이 그리 쉬운일은 아닐텐데..
김 : 처음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에요. 저에게 보험가입해 주시는 분들은 반반의 마음으로 가입해 주시죠. ^^ 예전엔 마음이 무거웠는데 지금은 감사할 따름이에요. ㅎㅎㅎ 저가 살아가기위해 필요한 것은 일이니까요. 마음 쓰지 않아요~^^*
[안내] 김영주님은 항상 도움을 필요로 하는 중증장애우입니다. 따듯한 마음이 담긴 짧은 쪽지, 방문인사가 영주님에게 큰 힘이 됩니다. 김영주님께 마음의 쪽지.댓글을 쓰실 수 있도록 김영주님 블로그를 링크하니 짧은 1분을 영주님께 기부해 주세요!
코난의 세상속으로 http://blog.daum.net/21ko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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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9258-8349 김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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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전에 취미로 즐겼던 스킨스쿠버와 암벽등반
교통사고로 전신마비장애인이 된 김영주
뉴욕의 정범진판사, 이상묵교수, 왕태윤대표, 박경석선생님
장애인이동권연대, 패션쑈, 중증장애인 서바이벌대회
프로필사진, 사무실
익산시복지관, 삼육대학교, 오산중학교에서 한 강연
건교부장관상, 국가기록원상, 다음 블로그기자상, 장애인먼저실천상
김영주가 만나 본 유명인
만나서 반가운 사람들